화분이 서른 개를 넘긴 게 언제였더라. 식물을 6년쯤 키우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식물보다 도구를 먼저 샀어요. 인터넷에 예쁘게 진열된 원예 용품 사진, 그거 한 번 보면 못 참거든요. 저게 있어야 잘 키울 것 같고, 저 도구를 든 손이 왠지 능숙해 보이고. 그렇게 장바구니를 채운 지 몇 년, 지금 베란다 수납 서랍을 열면 한 번도 안 쓴 물건이 절반이에요. 오늘은 포장 뜯자마자 서랍행이던 것들과, 손잡이가 반질반질해지도록 매일 쥐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적어볼게요. 브랜드는 안 밝히고 종류로만요.
충동구매로 채워진 원예 서랍
처음엔 순진하게 믿었어요. 도구가 많으면 그만큼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이 되는 줄. 그래서 첫해에만 물조리개, 분무기, 가위, 장갑, 미니 도구 세트, 수분측정기, 온습도계까지 순식간에 질렀어요. 결과요? 식물은 계속 죽는데 서랍만 무거워졌죠. 5년쯤 지나 대청소하던 날, 안 쓰는 것들을 방바닥에 한자리 모아놓고 한참을 멍하니 봤어요. 이걸 다 돈 주고 샀다고. 여기 들어간 돈이면 좋은 흙을 몇 포대는 샀을 텐데. 그 허탈함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어요.
매일 손이 가는 건 결국 세 가지

지금 제 손이 가장 자주 닿는 건 딱 셋이에요. 주둥이가 긴 1.5리터 물조리개, 원예용 가위, 그리고 모종삽. 물조리개는 원래 컵으로 물을 주던 시절에 잎마다 물이 튀고 흙이 파여서, 그게 짜증나서 산 거예요. 지금은 흙 위 원하는 자리에 조준하듯 부을 수 있어서 이거 없으면 손이 허전하고요. 가위는 사연이 좀 있어요. 마른 잎을 손으로 뜯다가 멀쩡한 줄기까지 뭉갠 적이 있거든요. 그날 이후로 무조건 가위. 모종삽은 봄가을 분갈이철만 되면 없어선 안 될 물건이고요. 이 셋은 지금도 베란다 문 앞에 아무렇게나 나와 있어요. 서랍에 넣을 새가 없어서요.
수분측정기, 나는 결국 안 믿게 됐어요

만 원 조금 넘게 주고 산 수분측정기. 흙에 꽂으면 바늘이 젖음과 건조를 알려주는 거요. 처음엔 신기해서 화분마다 다 꽂아봤어요. 그런데 이상하더라고요. 마사토가 많은 흙은 물을 흠뻑 줬는데도 바늘이 계속 건조 쪽에 붙어 있고, 부엽토가 많은 화분은 마른 지 한참인데도 젖음이라고 뜨는 거예요. 한 번은 그 숫자만 믿고 물을 줬다가 뿌리를 무르게 한 적도 있어요. 그 뒤로 미련 없이 서랍행. 요즘은요? 그냥 검지를 흙에 두 마디쯤 푹 찔러봐요. 손끝에 닿는 축축함, 그게 어떤 바늘보다 정확했어요.
예쁜 3종 세트에 속은 이야기
나무 손잡이에 미니 갈퀴, 미니 모종삽, 미니 호미가 세트로 묶인 물건. 순전히 사진이 예뻐서 샀어요. 화분 옆에 꽂아두면 그림 같겠다, 딱 그 마음이었죠. 그런데 막상 쓰려니까 갈퀴는 좁은 화분 흙을 긁을 일이 없어서 한 번도 손이 안 갔고, 호미는 베란다 텃밭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쓸 데가 없더라고요. 결국 세 개 중 모종삽 하나만 살아남고 나머지 둘은 서랍 구석으로. 세트로 묶인 예쁨에 홀리지 말고 필요한 하나를 제대로 사는 게 낫다는 걸, 그때 만 원 넘게 내고 배웠네요.
자동 급수 용품에 돈 날린 후기

휴가 갈 때마다 물 걱정이 발목을 잡길래, 페트병에 꽂는 급수기랑 물방울 모양 유리 급수볼을 샀어요. 이거면 마음 놓고 떠나겠다 싶었죠. 웬걸, 흙이 조금만 굳으면 물이 아예 안 내려가고, 그러다 어느 순간 둑 터지듯 콸콸 쏟아져서 과습이 오더라고요. 그 급수볼 때문에 아끼던 다육이 하나를 물러 떠나보낸 뒤로는 아예 손을 끊었어요. 예쁜 원예 장갑도 한 켤레 있는데, 흙 감촉이 하나도 안 느껴져서 결국 맨손으로 조물조물하게 되고요. 이런 것들, 있으면 그럴싸해 보이긴 해요. 근데 없어도 식물 키우는 데는 하나도 지장이 없었어요.
다시 산다면 이 순서로 살 거예요
만약 제가 다시 왕초보로 돌아간다면, 물조리개, 가위, 모종삽. 이 셋만 먼저 사고 지갑을 닫을 거예요. 남는 돈은 도구가 아니라 배수 잘 되는 흙과 밑구멍 뚫린 화분에 쓰고요. 도구는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뭐가 진짜 아쉬운지 몸이 먼저 알아채요. 그때 하나씩 늘려도 하나도 안 늦어요. 저한테는 서랍 가득한 안 쓰는 용품들이, 돌아보니 제일 비싸게 치른 공부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