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는 집은 창이 딱 하나입니다. 그것도 북쪽. 맑은 날 오후 두세 시, 침대에 앉아 책을 펴려고 하면 글자가 흐릿해서 결국 형광등 스위치를 누르게 되는 그런 밝기예요. 이사 온 첫 봄에 저는 이걸 정말 우습게 봤습니다. 그래도 초록색 하나쯤 있으면 방이 좀 사람 사는 것 같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동네 꽃집에서 눈에 예쁜 걸로 여덟 개를 골라 왔어요. 그리고 반년 만에 그중 다섯 개를 종량제 봉투에 넣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이 방에서 뭐가 버티고 뭐가 죽는지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압니다.
창이 북쪽만 보는 집에 이사 왔다
북향이 왜 문제인지, 처음엔 정말 감이 없었어요. 남향처럼 해가 쨍하게 안 들 뿐이지 밝긴 밝잖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식물한테는 그 '밝긴 밝은' 게 함정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직사광선은 단 한 줄기도 안 들어오고, 창으로 넘어오는 건 하늘에 한 번 반사돼 들어온 뿌연 간접광이 전부였어요. 제 눈에는 충분히 환한데, 잎사귀 입장에서는 밥을 늘 반 공기만 먹는 밝기였던 거죠. 저는 이 사실을 화분 다섯 개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인정했습니다.
제일 먼저, 제일 여러 번 죽인 건 다육이였다

가장 만만해 보인 게 다육이랑 손톱만 한 선인장이었어요. 물도 자주 안 줘도 된다길래, 이거야말로 게으른 나한테 딱이다 싶었죠. 웬걸, 정반대였습니다. 빛이 모자라니까 통통하던 잎과 잎 사이가 스프링 늘어나듯 벌어지면서 목이 흐물흐물 길어졌어요. 이른바 웃자람이었는데, 그 흐느적거리는 상태에서 물을 한 번 줬더니 밑동부터 물컹, 손대면 뭉개질 만큼 물러 버렸습니다. 같은 창가 그 자리에서만 다육이를 세 번 죽였어요. 세 번째로 무른 줄기를 뽑는데 손끝에 물기가 배어 나왔고, 그 순간 아 이 방에서 다육이는 그냥 안 되는 거구나, 하고 드디어 손을 놨습니다.
허브랑 무늬 식물도 줄줄이 보냈다

다음 차례는 허브였습니다. 요리에 뜯어 넣겠다는 야무진 꿈까지 꿨죠. 바질은 데려온 지 3주 만에 줄기가 삶은 국수처럼 축 늘어져 화분 밖으로 쓰러졌고, 로즈마리는 향은 고사하고 안쪽 잎부터 까맣게 타들어 가며 말라 죽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허브는 하루 대여섯 시간은 볕을 봐야 하는 애들이더라고요. 북향 원룸은 그 근처에도 못 갔던 거죠. 무늬가 예뻐서 큰맘 먹고 데려온 무늬 스킨답서스랑 칼라데아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저를 속상하게 했습니다. 죽진 않았는데, 흰 무늬가 매주 조금씩 옅어지더니 어느 날 보니 그냥 밋밋한 초록 잎이 돼 있었어요. 빛이 부족하면 식물은 화려한 무늬부터 슬그머니 포기한다는 걸, 그때 눈으로 봤습니다.
3년 넘게 버틴 애들의 공통점

반대로, 얄미울 만큼 안 죽는 애들이 있었어요. 산세베리아, 무늬 없는 초록 스킨답서스, 스파티필름, 금전수, 그리고 테이블야자. 이 다섯은 3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공통점을 한참 뒤에야 알았는데, 하나같이 원래 큰 나무 그늘이나 숲 바닥처럼 빛이 잘 안 드는 데서 살던 식물들이더라고요. 화려한 맛은 없어도, 애초에 어두운 데서 견디게 설계된 애들인 셈이죠. 특히 산세베리아는 제가 야근에 치여 두 달을 통째로 잊고 물을 안 줬는데도 잎 하나 안 처지고 태연했습니다. 미안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어요.
저광량에선 물주기가 정반대였다
가장 크게 깨진 고정관념은 물주기였습니다. 어두우니까 얘네도 기운이 없겠지, 뭐라도 챙겨 줘야지 싶어서 자꾸 물뿌리개를 들었는데, 그게 바로 뿌리를 썩히는 지름길이었어요. 빛이 적으면 식물이 물을 빨아 쓰는 속도도 같이 느려집니다. 그래서 흙이 남향에 있을 때보다 훨씬 오래, 눅눅하게 젖어 있어요. 예전 남향 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던 리듬을 여기선 열흘에서 보름에 한 번으로 확 늘렸더니, 그제야 애들이 안 죽었습니다. 지금은 손가락을 흙에 두 마디쯤 푹 넣어 보고, 속까지 바짝 말라서 흙이 부슬부슬할 때만 물을 줘요. 이 방에선 부지런한 게 아니라 게으른 물주기가 정답이었던 겁니다.
4년차인 지금, 북향 원룸에 남은 건 처음 여덟 중 살아남은 애들, 그리고 그 뒤로 하나하나 신중하게 들인 저광량 식물들입니다. 인스타에서 본 화려한 다육이 정원은 진작에 접었어요. 대신 얻은 게 있다면, 어떤 방이든 그 방에 맞는 식물이 따로 있다는 감각입니다. 북향이라 식물을 못 키우는 게 아니었어요. 북향에 맞는 애를 안 골랐을 뿐이었습니다.
